소설 '아가미' 리뷰 구병모
드라마 도깨비를 보면 고려의 왕이었던 왕여는 도깨비 김신으로부터 선왕의 유언을 듣는다.
"왕여는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다고 전해주어라."
도깨비 중에서
이 장면은 고려의 권력 암투가 그치지 않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선왕은 이복 형이라는 왕여와의 관계 때문에 왕여 또한 권력 다툼으로 인해 희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그에게 준 철저한 무관심을 통해 조금이라도 배제하고자 했다는 점을 보여준 장면이다. 선왕은 그런 매정한 방법을 이용하면서까지 엄마가 다른 동생을 보호하고자 했던 것이고, 왕여를 미워하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랑했음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소설 '아가미' 속 강하는 처음부터 말을 예쁘게 하는 건전한 청소년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에게 '노인네, 미친'등의 어린 아이가 쓰면 혼날 만한 언사를 서슴치 않는다. 당연히 객식구가 된 곤에게도 말이 곱게 나갔을 리가 없다. 곤에게 향한 그의 태도의 이유는 곤이 갖고 있는 특별함이 그가 가진 평범함을 너무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던 것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곤에게 행사한 언어적 폭력, 신체적 폭력 그리고 눈에 띄면 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곤 했지만 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키워준 이유는 곤의 아가미 그리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비늘에서 비롯된 그의 특별함을 강하는 사실 부러워했던 것이라고 해석한다. 부럽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해서 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도 멍청한 건지, 둔한 건지 꿋꿋하게 그 집에 잘도 붙어산다. 강하의 '물고기 새끼'라는 욕과 횟집 수족관에다 버려서 회로 떠지게 만들어주겠다는 황당무계한 협박에도, 챙겨주는 듯 챙겨주지 않는 노인에게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간다. 비록 강하가 시켜서 시작한 일이기는 하나, 호수 물 깊숙이 들어가서 유유히 유영하면서 나름대로의 삶의 쾌락을 찾기도 헀다. 본인의 특별한 신체적 결함인지 이점인지 모를 일종의 특이점에 대해서도 아마 강하가 그의 곁에 없었다면 오히려 마음대로 물속에서 지내다가 땅을 밟고 인간의 모습이 되는 모습을 호수 근처 사람들에게 들키게 되어 방송을 타서 상품화되거나 아니면 포획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곤과 강하는 어른의 세심한 돌봄 없이 혼자 큰 두 소년들이지만 둘은 어쩌면 서로에게 으르렁대면서 자기들도 모르게 의지해왔는지도 모른다. 애증의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같이 있으면 짜증나는데, 없으면 또 되게 허전한 그런 관계. 둘의 관계는 톰과 제리인듯, 영화 '강철비' 속 정우성, 곽도원인 듯,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인데, 그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정은 존재했나 보다.
소설의 결말을 알기 전까지 나는 강하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 그렇게 욕하고 재수없어 할 거면 애초에 왜 그리 할아버지에게 곤을 그냥 데리고 있자고 조른 것이었을까, 단지 엄마도 자신을 버리고, 그닥 희망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해서 곤을 화풀이 대상으로 선택한 것일까? 하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불량하게 등장한 캐릭터이기는 했지만 뭘 저렇게까지 싫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강하의 엄마가 죽자, 곤에게 누명이 씌워지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 뒷처리를 담당하는 모습과 함께 "물론 죽이고 싶지, 하지만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라는 말을 하는 강하의 모습을 상상하니, 거친 방식이었지만 강하는 곤에 대한 부러움, 나름대로의 애정이 있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객식구일 뿐인 남자애가 가족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정받는 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강하의 엄마가 죽은 날이었다. 강하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죽은 것보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던 '물고기 새끼'가 살인범으로 몰리지 않게끔 도와주는 강하의 모습은 낯설고도 가장 인간적이었다. 결론적으로 해석하자면, 이 소설은 가족이란 낳아주었다고 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고, 얼마나 오래 함께 시간을 공유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도깨비'의 왕여의 이복 형은 왕여를 돌보지 않고, 방치의 형태로 사랑했다면 '아가미' 속 강하 또한 곤을 돌본다는 느낌보다는 강하에게 욕과 협박의 형태로 곤을 사랑했던 것이다. 아이러나하게도. 한가지 더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강하는 죽기 전에 곤이 보내는 메시지에 뜬 번호를 통해 곤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었는데, 반대로 강하가 죽자, 곤은 강하의 시체를 찾아다니기 위해서 물 속을 해메고 있다는 것이다. 둘은 정말 징글징글하게도 서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말 한 번을 따뜻하게 한 적 없는 두 남자가 정작 서로를 찾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이들의 관계는 사랑인 건지, 의리인 건지, 정인 것인지 한 단어로 정의내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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