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영화 스물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거 좀 힘들다고 울어 버릇하지마. 어차피 내일도 힘들어."
"사람들이 우리 보고 좋은 때다 좋을 때다 그러는데, 애매하게 뭐가 없어. 힘들고, 답답하고. 그런데 어른들은 배부른 소리라 그러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이 소설은 위 대사와 똑같이 "애매하게 뭐가 없이" 살다가 인생을 낭비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깊이 통감했다. 세상엔 성공하는 일보다 해도해도 안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실패를 거듭하면서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에 실망조차 하지 않게 되면, 사람은 원초적인 욕망과 비관만을 남겨두나 보다. 이 소설 속 모든 단편의 주인공이자 화자들의 겉은 허허실실 문제없는 듯 보이지만 속은 이미 곪아서 사라졌다.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성적 욕망이나 채워가면서 살아가는 '나'와 육체적 사랑으로 돈을 벌어 본인 나름의 플라토닉 러브를 위해서 돈을 쓰는 제제, SNS스타로 살아가지만 SNS 간판만 있는 애정결핍자 소라, 본인은 아이돌로서 실패했음을 알고도 다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성공을 꿈꾸는 만년 연습생, 사이비 종교에 탐닉한 보호자를 배신한 아들까지. 이들은 모두 사회가 정해놓은 주류의 삶에 편승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답답함을 성적인 쾌락이나 술, 사이비 번영신앙에 대한 헌신으로 표출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정신적 공허함은 아무리 육욕을 해소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그들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태어났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상에 표효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희망찬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 고난 뒤에 행복이 온다는 말, 그들에게는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동성을 사랑하도록 태어났든, 영화 감독이 되어 보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든 내일도 어차피 오늘과 똑같이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젊음을 부러워하면서 현 시점 우리 청년들은 돈 때문에, 혹은 사랑 때문에 아니면 외로움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곁에서 사랑하는 시늉을 하고, 가끔 술 먹고, 일탈이나 하는 '배부른 소리'나 하는 세대로 몰아간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은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에는 '진짜 내 꺼'가 없다는 점이 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제의 직업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진짜'가 아니고, 소라의 인스타그램도 소라의 허상만을 쫓는 '진짜인 척 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햄릿' 속의 여자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잡힌 캐릭터도 그녀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 척 그녀의 마음과는 상반되는 가짜일 뿐인 허울인 것이다. 이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만의 껍데기를 들고서 그것만을 바라보고 살고 있다.

혹자는 "아니, 왜 인생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라봐요? 오던 복도 당신 보고 달아나겠네."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이라는 것들은 가끔 더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계속 보고 있기에 거부감이 들기에 사람들이 피하는 경우도 있다. 슬프고, 아픈 건 보기 싫고, 좋은 것만 보고 살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 떄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이 이 지경까지 부정적으로 묘사된 이유는 그들의 삶이 너무 적나라하게 암울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생에는 플랜 B가 없고, 한 가지에만 무모하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공을 들였는데, 그 일련의 과정들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소라는 영화를, 제제는 연애를, 왕샤는 무용에 시간과 열정을 쏟았지만 그들의 각자 재능이 없었음을 알았다면 일찍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았어야 했다. 그들은 너무 무모하게 한길만 걸어왔는데, 그들도 그들이 가는 길에 희망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인생은 흔히 타이밍이라고들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인생의 어느 시점에 내 인생이 그리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못함을 깨닫고, 진로 변경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런 것은 입시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을 보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인물들이다. 단 하나에 희망을 걸고, 앞뒤 재지 않고 달리는 것은 도전 의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냥 무모함일 뿐이다. 그럴 때에는 적당히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세상은 '포기'한다고 하면 나약한 인간이라고 평가내리지만인생의 길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인생은 충분히 변주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최대한 여러 경험들을 해보고 살아갈 것. 그 경험들 속에서 즐거웠던 것들로 잔가지를 뻗다 보면 즐거움이 취미가 되고,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을지 누가 아나.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옷 만드는 사람들의 이면, Dior and I 디올 앤 아이

소설 '아가미' 리뷰 구병모

20(스물), Korean movie review